포항제철건설이야기
1975년초에 포항제철 원료처리 제2차 확장공사에 담당기사로 부임하였다. 그 당시에 포항제철(주)는 제1차 공장을 준공하여 소규모의 제철을 생산하고 있었다.현대건설에서는 용광로 설치공사인 고로시공현장과 원료처리시공현장을 맡아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장주위는 경계울타리를 쳐놓고 해병대출신의 경비들이 공장을 출입 할 때마다 소지품 검사를 했다.공장에서의 철조각의 분실을 예방하기 위함이란다. 또 전염병 예방주사를 맞을 때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한참 기다린 다음에야 예방접종후 정문을 통과 할 수 있었다.물론 외부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이 공사의 설계는 신일본제철(주)의 공장시설의 설계도면을 참조하여 스맥이라는 회사가 재설계하였다.그래서 일본기술자들도 많이 보였다. 현장은 1차공장가동을 하면서 시공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콘베이어 벨트에서 하루는 외국서 수입하는 고철의 쇳가루로 붉은 먼지가 나오고, 또하루는 코크스를 만들기 위한 석탄가루로 새까만 먼지가 나왔다. 가끔 현장의 먼지는 붉은 색과 검정먼지가 시루떡처럼 쌓여 있었다.나는 바람이 부는 날은 마스크를 두개를 쓰고 현장작업을 하였다.비가 오는 날이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공기가 깨끗하니까. 현장공기가 너무 좋지않아 타현장으로 전출을 희망하기도 했다. 그 당시 숙소는 포항시 해도동의 가설건물에서 현장직원들이 합숙을 하였다.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복사트럭을 개조해 화물칸에 천막과 의자를 만들어 타고 출근하였다.퇴근은 보통 오후 여섯시이나 콘크리트 타설시에는 항상 야근이었다.휴식은 지금처럼 매주 토,일요일이 휴무가 아니라 한달에 한번 삼박사일의 휴가를 시행하여서 항상 피곤하고 바뻤다.어머님의 한갑생신도 아침에 서울에 갔다가 저녁때에 현장을 복귀하는 바쁜생활을 하였다.내가 담당하는 구조물은 크러샤빌딩과 블랜딩빈 건물,그리고 컨베이어기초이었다.이 두건물은 높이가 대략 오층건물규모로 기둥과 기둥사이의 빔의 두께가 이미터이어서 세번에 나누어 콘크리트를 타설 한적도 있었다.이 공장건물의 높이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기 위하여 콘크리트펌푸카가 포항제철에서 관급장비로 지원되었다.그런데 이 장비가 지금처럼 펌푸의 마지막부분을 자유자재로 이동시킬 수 있는 장비가 아니라, 펌푸카가 콘크리트를 수직으로로만 올려주면 콘크리트 타설이 필요한 부분까지 조각함석을 연결하여야 하는바 이작업이 순수 인력으로 하여야 함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펌푸카 운전기사 한테 소주도 사주면서 펌핑을 천천히 해달라고 부탁도 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슬라브 콘크리트 타설시 함석연결부분을 이동시키지 못해 한쪽으로 집중됨으로,그로 인한 불균형하중으로 거푸집이 붕괴 될 수도 있으니까. 또 이곳 현장에는 VIP도로가 있는 데,주요인사나 외국손심이 지나가는 곳이다. 기성검사시에는 총무부장이 와서 청소상태를 확인하고 기성금을 받을 수 있었다. 공정율이 저조하면 발주처 사장이 현장소장에게 기합을 주었다는 일화도 있었다.해안가에서 일할 때 석탄및 고철운반용 선박이 들어 온다. 선박의 해상갑판원은 육지의 우리 노동자보다 자기들이 신사라고 우기기도 했다. 그들 한테서 가끔 일본 라면을 맛볼 수 있었다.